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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와 영화

애플TV 파친코의 핵심 키워드 - 파친코와 자이니치

by qaz001 202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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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 화제의 드라마 파친코. 총 8 부작 대사서시의 마지막 조각이 4월 29일 공개되었다. 근 한 달 반에 걸친 대장정이 마무리되고 시즌2의 제작이 확정된 시점에서 이민진 작가의 동명소설 원제이기도 한 드라마의 제목 '파친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작가가 제목을 파친코로 붙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파친코의 상징에 대해 알아보자.

 

파친코는 무엇?

파친코 기계 - 일본 마루한 홈페이지 제공
<파친코 기계 - 일본 마루한 홈페이지 제공>

 

파친코는 일본에 널리 퍼져있는 사행성 게임으로 미국의 핀볼게임과 비슷한데, 핀볼게임 위에 슬롯머신 게임이 합쳐진 형태다. 일본에서는 도박기계가 아니라 유흥성 놀이기계로 인정받아 전국에 보급되어 있으며 게임 방법은 간단하다.

 

1. 돈을 넣으면 게임용 쇠구슬이 채워진다.
2. 레버로 적당하게 힘조절을 해서 쇠구슬을 쏜다.
3. 쇠구슬이 게임기 중앙에 배치된 각종 장애물들을 통과해서 모니터 아래쪽에 있는 구멍인 스타터로 들어가게 한다.
4. 쇠구슬이 구멍에 들어가면 슬롯머신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5. 슬롯머신에 같은 무늬가 셋트로 나오면 정해진 확률의 쇠구슬이 쏟아진다. 

 

이 쇠구슬을 경품이나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데, 파친코는 일본에서 1년 매출액이 2000억 달러, 230조 원 정도 된다. 일본은 동네마다 파친코 가게가 있기 때문에 일본의 파친코 산업 규모를  라스베이거스의 30배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파친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 파칭코 - 나무위키



귀국하지 못한 재일 외국인 자이니치들의 고단한 삶

 

일본에서 자이니치의 삶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일제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끌려와 일본에 정착했기 때문에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 돌아가지 못했는데 재일 조선인들의 귀국을 도우라는 연합군사령부의 명령을 일본이 거의 모르는 척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아놓았은 작은 재산을 처분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귀국할 방법을 찾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일본에 남아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귀국할 방법을 모색하면서 기다리던 차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자이니치들도 북한과 남한, 두 개의 파벌로 분열된다. 이후 북한과 남한의 공공연한 갈등 속에서도 민단과 조총련이라는 두 자이니치 집단은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채 일본에서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지속한다. 그 와중에 일본의 극심한 차별정책 때문에 대부분의 자이니치들이 정상적인 직업을 갖지 못하고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다.



자이니치들이 파친코 업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일제에 부역한 일부 고위층, 학업을 위해 넘어간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일제에 의해 반강제로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고액의 임금을 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가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전쟁이 끝났어도 그런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없었고, 종전 이전보다 더 궁핍한 삶을 이어나가야 했다.

 

전후 물자가 부족하여 일본인들도 살기 힘든 상황에서 일본에 정착한 재일동포, 즉 자이니치들이 먹고살기 위해 나갈 수 있는 길은 세 가지뿐이었다. 야쿠자, 자영업, 예술이나 스포츠 등 예체능계. 모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기 실력을 검증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였다. 지금도 재일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가 야쿠자, 파친코, 예체능계이다. 이중 일본에서 자영업의 대표적인 업종이 음식점과 파친코였는데, 누구나 기술 없이 뛰어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파친코 업종이었다.

 

현재 일본의 파친코 점포의 80%를 자이니치가 장악하고 있으며, 시장점유율 1위의 마루한과 2위의 다이남 모두 자이니치이다. 이중 5할이 북한계, 3할이 한국계에 속한다. 도박 전문가들에 의하면 수많은 도박 종류를 전전하다가 마지막에 정착하게 되는 종류의 도박이 파친코라고 한다. 파친코는 중간 과정이 필요 없이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왜 제목이 파친코인가?

 

2005년 본인이 자이니치인 최양일 감독(사이 요이치)이 자전적 소설인 “뼈와 살”을 영화화하여 개봉했다. 그 영화도 일본과 한국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은 바 있는데, 그 영화 속 주인공도 생계수단이 파친코였다. 일본에 거주하는 자이니치들의 내분과 잔혹함이 자세하게 그려져서 당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이다.

 

김민진 작가도 자이니치가 일본 사회에서 갖고 있는 특수성과 파친코라는 업종 사이의 유사성을 알아채고 제목을 파친코라고 지었을 것이다. 파친코는 불법은 아니지만 언제라도 범죄조직인 야쿠자와 연루될 수 있는 업종이다. 자이니치는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일본 국민이 아니라 특별 영주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경계에 서있다는 것은 본인은 물론 주변인들에게도 큰 불안감을 준다. 그런 불확실성이 일본 내 자이니치의 삶이고 파친코 업종이 갖고 있는 특성이다. 파친코는 도박기계지만 자이니치의 인생에서 파친코는 일본이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기도 하다. 파친코는 인생 한 방이라는 도박적인 특성보다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같이 심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삶, 그러면서도 어딘가에 있을 아주 작은 희망을 은유하고 있다.

 

파친코에 설계된 이중의 어려움

 

파친코 기계는 두 가지의 도박이 합쳐진 것이다. 첫 번째는 핀볼게임이다. 먼저 작은 쇠구슬을 스타터라고 하는 모니터 아래의 작은 구멍에 들어가게 해야 하는데 이 과정도 엄청나게 어렵다. 중간에 배치해놓은 다양한 장애물들을 거치면서 쇠구슬은 이리저리 튀어나가 버리고 아주 극소수만, 그것도 아주 우연히 스타터 구멍으로 들어간다.

 

전후 일본에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일본 사회에서 이중삼중의 차별을 받아야 했다. 그런 차별 속에서 가장 밑바닥 인생들은 대개 넝마주이로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해야 했고, 넝마주이에서 두각을 보이면 작은 고물상을 차려 다른 넝마주이들로부터 폐자원을 모아 돈을 벌었으며, 그런 고물상들의 꿈이 안정적인 파친코 가게를 차리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쇠구슬이 스타터 구멍으로 들어간 다음부터 돌아가기 시작하는 슬롯머신이다. 슬롯머신이 돌아가면 모니터에 그림이 빠르게 교차하면서 가로나 세로, 또는 대각선으로 같은 그림이 모이면 정해진 배율의 경품이 터지게 된다. 간혹 고배율의 잭팟이 터지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슬롯머신 게임에서 거의 대부분은 꽝이다.

 

일본에 파친코 가게는 우리나라 피시방처럼 전국에 걸쳐 퍼져있다.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창업을 할 수 있는 반면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경품을 환전해주는 업체와 알게 모르게 연계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불법으로 흐르기도 쉬고, 업종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그래서 사실상 야쿠자와 연계하지 않고 파친코 가게를 창업해서 성공하기란 힘들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는 전국에 걸쳐 구멍가게 크기부터 테마파크를 방불케 하는 규모까지 다양한 파친코 가게가 존재하기 때문에 파친코 업종은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얻을 수 있는 일자리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에서 파친코로 모여드는 인연들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는 아버지가 다른 두 아들을 낳아 기른다. 그중 큰아들 노아는 존경하는 백이삭 목사를 진짜 아버지로 알고 성장하면서 일본 사회의 주류로 올라선다. 그러다가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아쿠자 출신 한수라는 것을 한 후에 충격을 받고 잠적하는데, 그가 몸을 숨긴 곳이 바로 파친코였다.

 

선자의 둘째 아들 모자수는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애초부터 파친코 업계에 몸을 던져 결국 파친코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그 과정에서 모자수는 탈법과 합법을 드나들면서 줄타기를 하고, 이 과정을 지켜본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그런 아버지를 떠나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떠난다. 드라마 파친코의 두 번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솔로몬은 결국 월 스트리트 금융가의 비정함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파친코에서 일을 하려고 한다.

 

가장 화려한 삶을 살다가 바닥으로 내려온 노아가 마지막에 자신을 의탁한 곳도 파친코였고, 처음부터 살아남기 위해 모자수가 선택한 일도 파친코였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떠났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서 선택하려고 하는 일도 파친코이다. 이들에게 파친코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는 고국과 고향을 대신하는 제2의 고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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